노동·정치·사람 1월 회원모임으로 진행한 다큐 ‘1991, 봄’상영회를 보고 보내온 회원 기고글입니다

 

김세현 | 노동·정치·사람 회원

 

1991, 봄을 시청중인 김세현 회원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되는 1991년 봄은, 1993년에 태어나 2014년에 노동당에 입당한 것이 활동의 시작인 나에게 상당히 생소한 시기다. 매년 5월이면 등굣길 한편에 붙어있는 대자보와, 구독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에서 드물게 보게 되는 글들이 1991년의 ‘열사정국’에 관한 정보의 전부였고, 운동의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모인 세미나에서도 1991년 봄은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1991, 봄’이라는 제목과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 몇 줄을 보았을 때는, 그 역사의 한 조각인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화는 단순히 사실관계만을 조명하고 있지는 않았다. 스토리펀딩의 제목인 ‘강기훈 말고 강기타’나 본래 제목이었던 ‘국가에 대한 예의’라는 이름에서 고민한 흔적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 내내 강경대 열사부터 김귀정 열사까지의 11명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이야기하는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강기훈씨를 비롯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나란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1991년의 사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지금까지도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사건의 피해자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강기훈씨의 이야기를 본인의 기타 연주에 맞춰 배열한 것이 흥미로웠다.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강기훈씨는 영화 내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시시한 삶’을 추구함으로써 본인을 치유하고자하기 때문인지, 그를 드러내는 것은 기타 소리와, 그에 나란히 놓인 주변인의 목소리뿐이다. 그가 어떻게 싸워왔고 지금은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치유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각 장에 따른 기타 연주곡을 배열한 방식을 보면, 감독이 왜 이 영화를 음악 다큐멘터리라고 규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장면 캡쳐

영화에서는 역사 속의 투사나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하지 않고 그 기억을 가지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결코 과거를 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난다. 오히려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국가폭력을 똑바로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와 애도를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1991년 봄’의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폭력의 작태를, 운동의 패배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군사정권의 연장선에서 국가권력이 얼마나 폭력적이었고, 사법이 얼마나 그 폭력에 앞장서서 복무해왔는지, 또 그 일련의 과정이 치졸하고 비열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일 것이다. 민주화투쟁을 다룬 여느 영화와 같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군사독재정권의 부역자들에 의해 수많은 목숨이 스러지고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보면서 다시금 분노하고, 또 눈물 흘렸다. 하지만 이번에 1991년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그 국가폭력에 치열하게 저항한 투쟁이 왜 저렇게까지 지독하게 외면당하고, 패배했을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대의 분노와 억울함을 직접 느끼지는 않았지만, 노태우 정권의 폭압보다도 대중의 외면과 염증이 더 절망적이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기도 한다. 정원식 사건 이후의 경과를 보았을 때, 물론 정권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공작의 영향이 있었을 테지만, 열사들의 죽음도, 수많은 진실이 감춰지고 강기훈씨를 비롯한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긴 것도 결국 대중의 승인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이 국가폭력이었든, 대중의 염증이었든, 언론의 공작이었든 1991년 봄이 결국 패배로 끝났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패배를 겪은 사람들은 그 이후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더 나은 운동을 만드는 데에 이 패배와 그에 대한 분석을 기반 삼았을 것이다. 패배의 기억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겪어본 사람들의 마음에만 남기에는 중요한 패배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교훈일수도 있고, 반성일수도 있고, 기억과 애도일수도 있는 기록이 더욱 많이 등장하는 것, 더 많이 말하는 것만이 패배에서 그치지 않는 방법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치유와 애도는 그 기억을 공유하고, 그 기억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사책에도, 운동권 세미나에서조차도 나오지 않는 1991년 봄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직시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모범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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